서양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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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양 철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진, 광범위한 학문 분야이다. 고대에는 자연 과학을 포함한 모든 지적 탐구를 아우르며,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문이 분화되어 자연 과학은 독립적인 분야로 발전했고, 철학은 인간 본성에 대한 추상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에 집중하게 되었다. 서양 철학은 고대 그리스-로마, 유대-기독교 문화, 르네상스, 계몽주의, 식민주의 등을 거치며 형성되었으며, 역사적으로 다양한 사상과 학파가 등장했다.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 신학과 결합하여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철학자들이 활동했고, 근대에는 르네 데카르트의 합리론, 영국 경험론, 칸트의 비판 철학 등이 등장했다. 현대 철학은 분석 철학과 대륙 철학으로 나뉘어 발전하며, 마르크스주의, 실용주의 등 다양한 사상이 나타났다. 서양 철학은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미학 등 다양한 분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양 철학과는 실재에 대한 관점, 인생에 대한 실천적 관심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국에서는 에도 시대 말기에 서양 학문이 유입되었고, 메이지 시대를 거치면서 서양 철학이 수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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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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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학문 분야 | 철학 |
주요 분야 |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논리학 미학 정치철학 |
역사 | |
기원 | 고대 그리스 |
주요 시기 | 고대 철학 중세 철학 르네상스 철학 근대 철학 현대 철학 |
특징 | |
주요 특징 | 이성 중시 개인주의 경험주의 합리주의 실증주의 |
주요 철학자 | |
고대 |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
중세 |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
르네상스 | 니콜로 마키아벨리 토머스 모어 |
근대 | 르네 데카르트 존 로크 아이작 뉴턴 임마누엘 칸트 데이비드 흄 프랜시스 베이컨 장 자크 루소 |
현대 | 프리드리히 니체 카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버트런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르틴 하이데거 장폴 사르트르 미셸 푸코 |
영향 | |
영향 | 과학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종교 |
참고 문헌 | |
주요 참고 문헌 | 철학사 서양 철학사 윤리학 입문 사회계약론 |
관련 주제 | |
관련 주제 | 동양 철학 철학의 역사 정치 철학 과학 철학 언어 철학 심리 철학 페미니즘 철학 |
2. 역사
서양 철학의 역사는 고대 철학, 중세 철학, 근대 철학, 현대로 구분될 수 있다.
"서양 철학"이라는 용어는 19-20세기에 형성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유럽인들이 "서양"이라는 개념 없이 서로 다른 국가, 언어, 지역으로 인식했었다. 서양 철학은 그리스-로마와 유대-기독교 문화, 르네상스, 계몽주의, 식민주의를 포함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썼는데, 당시에는 철학의 범위가 오늘날 철학뿐만 아니라 자연 과학까지 포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학문의 분화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이러한 과학들은 철학과 분리되었다. 오늘날 철학은 자연과학과 달리 인간 본성에 대한 추상적이고 기본적인 질문을 다루며, 실험을 통해 답변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지 않다.
중세 철학은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어지며, 그리스 및 헬레니즘 철학의 재발견과 발전, 그리고 신학적 문제 해결의 필요성에 의해 정의된다. 믿음과 이성의 관계, 신의 존재와 통일성, 신학과 형이상학의 대상, 지식, 보편자, 개별화 등이 주요 문제였다.
근대 철학은 르네상스 이후부터 현대까지의 철학을 포괄하며, 전통적인 권위로부터의 독립, 지식의 기초와 형이상학적 체계 구축에 대한 새로운 초점, 그리고 자연 철학에서 현대 물리학의 출현으로 구별된다.
2. 1. 고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우주의 본질과 기원을 탐구하며, 세계의 arche|아르케grc(원인 또는 제1원리)에 관심을 가졌다.[1] 최초의 철학자로 인정받는 밀레투스의 탈레스는 물을 arche|아르케grc로 규정하고, "만물은 물이다"라고 주장했다. 탈레스의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arche|아르케grc가 아페이론, 즉 무한이라고 주장했다. 밀레투스의 아낙시메네스는 공기가 가장 적합한 후보라고 주장했다.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수"라고 주장하며, ''형식적'' 설명을 제시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음악에서 협화음 음정을 발견하여 ''조화''라는 개념을 확립했으며, 윤회를 믿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세계는 단일하고, 변하지 않으며 영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엘레아의 제논은 유명한 역설을 통해 다원성과 변화가 불가능함을 증명하려 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항상 유동적이라고 주장하며,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엠페도클레스는 arche|아르케grc가 네 개의 고전 원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랑과 불화의 힘에 의해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아낙사고라스는 ''누스'', 즉 정신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을 제안했다.
소피스트는 수사학 교사로, 주관주의와 상대주의를 장려했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하며 객관적인 진실은 없다고 했다. 프로디코스는 법이 항상 바뀌기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고, 안티폰은 관습적인 도덕성은 사회에 있을 때만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으로부터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소크라테스식 방법을 개발했다.[3] 그는 에우다이모니아, 정의, 미, 진리, 덕과 같은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에 집중했다. 소크라테스는 불경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기원전 399년에 독이 든 독미나리를 마시고 사망했다.
플라톤은 플라톤 아카데미와 플라톤주의를 설립했다. 소크라테스처럼 플라톤은 덕을 지식과 동일시하여 인식론의 문제로 이어졌다.[4][5]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중 엘리스의 파이돈은 에레트리아 학파를, 메가라의 유클리드는 메가라 학파를 세웠다. 안티스테네스는 견유학파(Cynicism)를, 아리스티푸스는 키레네 학파를 세웠다. 견유학파는 부, 권력, 명성에 대한 욕구를 거부하고 자연과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 키레네 학파는 쾌락주의를 옹호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요학파를 세우고 물리학, 생물학, 형이상학, 논리학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썼다.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은 모든 유효한 삼단논법을 분류하려는 최초의 논리학 유형이었다. 그의 인식론은 초기 형태의 경험론을 포함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4원인 모델을 제안했다. 그는 에우다이모니아를 궁극적인 선으로 간주하고, '덕'을 극단 사이의 황금 중용으로 정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를 최고의 기술로 여겼다. 국가는 여가, 학습, 관조를 통해 이성과 덕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 3세를 가르쳤다.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제국 시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견유학파가 계속되었으며, 피론주의,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신피타고라스학파가 등장했다. 플라톤주의는 아카데미 회의주의, 신플라톤주의와 같이 새로운 해석을 받았다. 제국 시대에는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가 특히 인기를 끌었다.[6]
여러 철학 학파는 에우다이모니아를 얻기 위한 다양하고 상충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일부 학파에서는 평정, ''아타락시아''(ἀταραξία), 또는 무관심, ''아파테이아''(ἀπάθεια)와 같은 내적 수단을 통해서였다.[7] 키티온의 제논은 스토아학파를 창시하여 견유학파의 이상을 받아들였지만, ''아파테이아''의 개념을 개인적인 상황에 적용하고, 사회적 의무를 위해 노력했다.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라는 이상은 두려움과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로 확인된 ''에우다이모니아''에 이르는 길로 여겨졌다. 키레네 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주의를 옹호했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보았지만, "몸의 무통증과 마음의 고통의 부재"를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이것은 쾌락주의를 ''아타락시아''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끌었다.

엘리스의 피론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함께 인도로 여행하여 불교의 가르침, 특히 삼법인의 영향을 받았다.[9] 그리스로 돌아온 후 피론은 피론주의를 시작했는데, 이는 비자명한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아타락시아''를 얻는 것을 방해한다고 가르쳤다. 피론주의는 모든 비자명한 명제에 대해 ''에포케''(판단 보류)를 사용한다. 아르케실라우스는 회의주의를 플라톤주의의 중심 교리로 채택하여 플라톤주의를 피론주의와 거의 동일하게 만들었다.[10] 아카데미 회의주의자들은 진리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고, 단지 인간이 그것을 얻을 능력이 있는지 의심했을 뿐이다.[12]
아스칼론의 안티오코스와 함께 아카데미 회의주의 시대가 끝나면서 플라톤 사상은 중기 플라톤주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페리파토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사상을 흡수했다. 아파메이아의 누메니우스는 신피타고라스학파와 결합했다.[15] 신플라톤주의자인 플로티노스는 마음이 물질보다 먼저 존재하며, 우주는 단일한 원인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단일한 마음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플라톤주의는 종교가 되었고 후기 기독교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는 피론이 세상에 대한 평정심과 초연함을 인도에서 얻었다고 설명했다.[55] 피론은 불교의 세 가지 법인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바탕으로 철학을 발전시키면서 불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56] 에드워드 콘체에 따르면 피론주의는 인도의 중관파와 비교될 수 있다.[57] 피론주의자들의 목표인 아타락시아(마음의 평정 상태)는 열반과 유사한 구원론적 목표이다. 피론주의자들은 독단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는 것(에포케)을 권장했다. 이는 부처가 특정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한 것과 유사하며, 나가르주나의 "모든 견해를 버림 (drsti)"과도 유사하다. 에이드리언 쿠즈민스키는 두 사상 체계 사이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주장한다.[58] 쿠즈민스키에 따르면, 두 철학 모두 평정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감각적 인상 뒤에 있는 궁극적인 형이상학적 실체에 대한 어떠한 독단적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으며,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철학에 대한 논리적 논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58]
키레네 학파의 철학자 키레네의 헤게시아스는 아쇼카의 불교 선교사들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진다.[59]
2. 2. 중세

중세 철학은 대략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에는 그리스 및 헬레니즘 철학이 재발견되고 발전되었으며, 신학적 문제 해결과 아브라함 계통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신성한 교리와 세속주의적 학문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논의된 주요 문제로는 믿음과 이성의 관계, 신의 존재와 통일성, 신학과 형이상학의 대상, 지식, 보편자, 개별화 등이 있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은 서방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부 중 한 명인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사상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여, 그의 영향력은 중세 철학을 지배했다. 아우구스티누스주의는 13세기까지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선호하는 출발점이었다. 그는 악의 문제, 정당한 전쟁, 시간 등에 대한 철학적 해명을 시도했다. 악의 문제에 대해 그는 악이 인간의 자유 의지의 필수적인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 의지와 전지의 양립 불가능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이 미래를 보지 않고 시간 밖에 완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스콜라 철학은 철학이나 신학이라기보다는 방법론에 가깝다. 변증법적 추론을 통해 추론으로 지식을 확장하고 모순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스콜라 철학은 엄격한 개념 분석과 구별을 중시하며, 강의와 저술에서 명시적인 논쟁 형태를 취했다. 전통에서 가져온 주제를 질문 형태로 제시하고, 반대되는 응답을 제시하며, 반대 제안을 논쟁하고 반박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엄격한 변증법적 방법 때문에 스콜라 철학은 다른 많은 연구 분야에도 적용되었다.[16][17]
캔터베리의 안셀름('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림)은 존재론적 논증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신은 정의상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이고,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위대하므로,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마르무티에의 가우닐로는 동일한 논리를 상상의 섬에 적용하여 반박했는데, 그는 완벽한 섬이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은 터무니없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보에티우스는 보편자 문제에 대해, 플라톤과 달리 보편자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특정 사물의 본질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피터 아벨라르는 유명론을 주장하여 보편자는 개별자가 공유하는 특징에 부여된 이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토미즘의 아버지로, 중세 기독교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독교 신학과 조화시키려 했다. 그는 영혼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기 위해 실체, 물질, 형식, 변화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을 고려했다. 그는 물질적 실체를 본질과 우연적 특징의 결합으로 정의했으며, 본질은 물질과 형식의 결합이라고 보았다. 인간에게 영혼은 본질이며, 플라톤의 영향으로 영혼을 불변하고 육체와 독립된 것으로 보았다.
중세 시대의 다른 서양 철학자로는 요한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라 포레의 길버트, 롬바르드의 피터, 빙엔의 힐데가르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로버트 그로스테스트, 로저 베이컨, 보나벤투라, 피터 존 올리비, 마그데부르크의 메흐틸트, 로버트 킬워드비, 겐트의 헨리, 둔스 스코투스, 마거릿 포레테, 단테 알리기에리,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 윌리엄 오컴, 장 뷔리당, 오트르쿠르의 니콜라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시에나의 카테리나, 장 제르송, 존 위클리프 등이 있다. 스콜라 철학 전통은 프란시스코 수아레스와 성 토마스의 존과 같은 인물들을 통해 17세기까지 번성했다. 중세 시대 동안, 서양 철학은 유대인 철학자 마이모니데스와 게르소니데스, 무슬림 철학자 알킨두스, 알파라비, 알하젠, 아비센나, 알가젤, 아베파체, 아부바체르, 아베로에스의 영향을 받았다.
2. 3. 근대
르네상스("재탄생")는 중세와 현대 사상 사이의 과도기였으며, 고대 그리스 철학 텍스트의 부활은 철학적 관심을 논리, 형이상학, 신학 분야의 기술적인 연구에서 도덕, 언어학, 신비주의에 대한 절충적인 탐구로 옮기는 데 기여했다.[18][19] 역사와 문학과 같은 고전과 인문학에 대한 연구는 기독교 세계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학문적 관심을 누렸으며, 이러한 경향은 인문주의로 불렸다.[20] 형이상학과 논리에 대한 중세의 관심을 대체하면서, 인문주의자들은 페트라르카를 따라 인간성과 그 미덕을 철학의 중심으로 삼았다.르네상스에서 초기/고전 현대 철학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조르다노 브루노와 같은 르네상스 철학자들은 대화를 주요 작문 스타일로 사용했다.[21]
르네상스 철학과 현대 철학을 구분하는 경계는 논쟁의 대상이다.[22]
"근대 철학"이라는 용어는 여러 가지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토마스 홉스는 정치 철학에 체계적인 방법을 적용했기 때문에 때때로 최초의 근대 철학자로 여겨진다. 반면에, 르네 데카르트는 형이상학적 문제보다 '지식'의 문제에 자신의 철학을 근거했기 때문에 종종 최초의 근대 철학자로 여겨진다.[23]


근대 철학, 특히 계몽주의 철학은 교회, 학계,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같은 전통적인 권위로부터의 독립,[24][25] 지식의 기초와 형이상학적 체계 구축에 대한 새로운 초점,[26][27] 그리고 자연 철학에서 현대 물리학의 출현으로 구별된다.[28]
계몽주의 시대의 근대 초기 철학에서는[29][30] 마음의 본성과 몸과의 관계, 자유 의지와 신과 같은 전통적인 신학적 주제에 대한 새로운 자연 과학의 함의, 도덕 및 정치 철학의 세속적 기반의 출현 등이 주요 주제로 다루어졌다.[31] 이러한 경향은 프랜시스 베이컨이 지식 확장을 위한 새롭고 경험적인 프로그램을 요구하면서 뚜렷하게 나타났고, 곧 르네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물리학과 합리주의적 형이상학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로 나타났다.[32]
데카르트의 인식론은 데카르트 회의라는 방법론에 기반을 두었다. 이 방법론은 가장 확실한 믿음만이 추가적인 탐구의 기초가 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아이디어로의 각 단계는 가능한 한 신중하고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방법론을 통해 데카르트는 유명한 격언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이와 유사한 주장은 이미 이전의 철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데카르트의 명제는 이후 서양 철학의 기초가 되었는데, 의식의 사적인 세계에서 외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이 20세기까지 널리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에서 주요 문제는 여전히 심신 문제로 남아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해결책은 바뤼흐 스피노자에 의해 제시되었는데, 그는 마음과 몸이 하나의 실체라고 주장했다. 이는 신과 우주가 하나이며, 존재의 총체를 포괄한다는 그의 관점에 근거한 것이었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세계가 모나드라고 불리는 수많은 개별 실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는 영향력 있는 초기 합리주의자로 여겨진다.[33]


토마스 홉스는 모든 것이 물질적이라고 믿는 유물론자였고, 모든 지식이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객체에 의해 촉발되는 감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경험론자였으며, 생각은 일종의 계산이라고 생각했다. 존 로크는 또 다른 고전적 경험론자였으며, 그의 주장은 합리주의가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접근 방식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데이비드 흄과 함께 '영국 경험론'의 핵심을 이룬다. 조지 버클리는 경험론에 동의했지만, 지각을 창조하는 궁극적인 현실을 믿는 대신, 주관적 관념론을 옹호했고, 세계가 지각의 결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은 영국에서 합리주의를 지속적으로 대표했다.
정치 철학의 측면에서, 주장은 종종 사회가 없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사상 실험인 자연 상태를 통해 인간 본성의 첫 번째 원리에 대한 논쟁에서 시작되었다. 홉스는 이것이 폭력적이고 무정부 상태일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의 삶을 "고독하고, 가난하고, 비참하고, 잔혹하고 짧은" 것으로 묘사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는 국가의 주권자가 본질적으로 무제한적인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반대로, 로크는 자연 상태가 개인이 자유를 누리는 상태라고 믿었지만, 그 중 일부(천부인권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사회를 형성할 때 포기해야 하지만, 절대적인 통치 정도는 아니라고 보았다. 한편, 장 자크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사람들이 고귀한 야만인으로서 평화롭고 편안한 상태로 살았으며, 사회의 형성이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근대 초기 시대의 대략적인 종말은 임마누엘 칸트가 형이상학을 제한하고, 과학적 지식을 정당화하며, 이 두 가지를 도덕과 자유와 조화시키려는 체계적인 시도로 가장 자주 식별된다.[34][35] 합리주의자들이 지식이 ''선험적'' 추론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던 반면, 경험론자들은 그것이 ''후험적'' 감각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고, 칸트는 마음이 ''선험적'' 이해를 사용하여 ''후험적'' 경험을 해석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러한 견해를 조화시키려고 했다. 그는 마음의 메커니즘이 사람들에게 인과 관계의 인식을 제공한다고 주장한 흄의 철학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 외에도 갈릴레오 갈릴레이, 피에르 가상디, 블레즈 파스칼, 니콜라 말브랑슈, 안톤 판 레이우엔훅, 크리스티안 호이겐스, 아이작 뉴턴, 크리스티안 볼프, 몽테스키외, 피에르 베일, 토마스 리드, 장 르 롱 달랑베르, 애덤 스미스 등 많은 철학자, 과학자, 의사, 정치가들이 근대 철학에 기여했다.
독일 관념론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독일에서 등장했다. 이 철학은 1780년대와 1790년대 이마누엘 칸트의 저작에서 발전했다.[36]

초월적 관념론은 이마누엘 칸트가 주창한 것으로, 객관적 판단의 조건하에 가져올 수 없는 많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견해이다. 칸트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상반된 접근 방식을 조화시키고, 형이상학 연구를 위한 새로운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순수이성 비판''(1781)을 저술했다. 칸트는 세상에 대한 객관적 지식은 순수한 감각 데이터의 흐름에 개념적 또는 범주적 틀을 부과하는 정신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틀에는 공간과 시간 자체가 포함된다고 보았다. 그는 사물 자체가 인간의 인식과 판단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단순한 의미의 관념론자는 아니었다. 칸트의 사물 자체에 대한 설명은 논란이 많고 매우 복잡하다. 그의 작업을 이어받아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은 세계의 독립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철저한 관념론 철학을 창조했다.
절대 관념론의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G. W. F. 헤겔의 1807년 저서 ''정신 현상학''이다. 헤겔은 자신의 사상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전의 모든 철학이 불완전했다고 인정했다. 그의 목표는 그들의 작업을 올바르게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헤겔은 철학의 두 가지 목표가 인간 경험에서 나타나는 모순(예를 들어,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상반된 모순에서 비롯됨)을 설명하는 것과, 동시에 더 높은 수준의 검토를 통해 이러한 모순의 양립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존재"와 "비존재"는 "생성"으로 해결됨)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고 보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모순의 수용과 화해 프로그램은 "헤겔 변증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헤겔의 영향을 받은 철학자로는 인간이 외부 세계에서 자신의 특성을 투영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인식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투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그리고 영국 관념론자인 T. H. 그린, J. M. E. 맥테거트, F. H. 브래들리, R. G. 콜링우드 등이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영국 관념론이 쇠퇴한 후, 독일 관념론의 핵심 교리를 받아들인 철학자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가들, 알렉상드르 코제브, 장-폴 사르트르 (''변증법적 이성 비판''에서),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 등 많은 철학자들이 헤겔 변증법을 받아들였다. 독일 관념론의 중심 주제인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정당성은 21세기 포스트-대륙 철학에서 여전히 중요한 논쟁의 대상이다.

'''후기 근대 철학'''은 일반적으로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이 사망하고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이 출판된 1781년을 시작점으로 여겨진다.[37] 19세기는 이후 대륙 철학과 분석 철학의 분열로 이어질 초기 단계를 보였다. 전자는 형이상학의 일반적인 틀에 더 관심을 보였고(독일어권에서 더 흔함), 후자는 인식론, 윤리학, 법, 정치의 문제에 집중했다(영어권에서 더 흔함).
독일 철학은 독일 대학교 시스템의 지배력에 힘입어 이 세기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독일 관념론자들, 예를 들어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그리고 예나 낭만주의의 구성원들(프리드리히 횔덜린, 노발리스, 카를 빌헬름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세계가 합리적이거나 정신과 같은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고, 따라서 완전히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칸트의 작업을 변화시켰다.[38]
헤겔은 역사가 정신 (보편 정신)의 자기 충족과 자기 실현을 향한 변증법적 여정이라고 주장했다. 정신의 자기 인식은 절대적 지식이며, 그 자체가 완전한 자유를 가져온다. 그의 철학은 절대적 관념론을 기반으로 했으며, 현실 그 자체가 정신적이었다. 그의 유산은 보수적인 우파 헤겔주의자와 급진적인 청년 헤겔주의자로 나뉘었고, 후자에는 다비드 슈트라우스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가 포함되었다. 포이어바흐는 헤겔 사상의 유물론적 개념을 주장했고, 카를 마르크스에게 영감을 주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칸트와 인도 철학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칸트가 세계를 물자체 (실재)와 현상 (겉보기) 현실로 나눈 것을 받아들였지만, 전자에 대한 접근 가능성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실제로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의지의 경험이었으며, 의지는 자연 전체의 근본이며 다른 모든 것은 겉보기였다. 그는 이 의지의 좌절이 고통의 원인이라고 믿었지만, 프리드리히 니체는 힘에의 의지가 힘을 실어주고 성장과 확장을 이끌어내므로 윤리의 기초를 형성한다고 생각했다.
제러미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기반으로 한 결과주의 윤리인 공리주의를 확립했는데, 이는 체사레 베카리아에서 가져온 아이디어였다. 그는 행복 계산법을 적용하여 모든 행위가 이와 관련하여 그 가치로 측정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동료 제임스 밀의 아들 존 스튜어트 밀은 이후 그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벤담의 작업에서 순수한 쾌락의 가치 평가와 대조적으로, 밀은 쾌락을 더 높은 종류와 낮은 종류로 나누었다.
논리학은 이 분야가 시작된 이후 가장 중요한 진보의 시기를 시작했으며, 수학적 정확성이 증가함에 따라 조지 불과 고틀로프 프레게의 작업에서 추론의 전체 분야가 형식화되었다. 20세기까지 철학의 형성을 계속할 사고 방식을 시작한 다른 철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 고틀로프 프레게와 헨리 시지윅: 논리학과 윤리학에서의 작업은 초기 분석 철학의 도구를 제공했다.
- 찰스 샌더스 퍼스와 윌리엄 제임스: 실용주의를 창시했다.
- 쇠렌 키르케고르와 프리드리히 니체: 실존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2. 4. 현대
현대 철학은 크게 분석 철학과 대륙 철학으로 나뉜다.[43] 분석 철학은 논리 실증주의, 일상 언어 철학 등 다양한 사조를 포함하며, 명확한 논증과 언어 분석을 중시한다. 대륙 철학은 현상학, 실존주의,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 등 다양한 사조를 포괄하며, 인간의 실존과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강조한다.20세기 철학은 지식의 기반에 대한 철학적 담론 내에서의 일련의 갈등으로 야기된 격변을 다루며, 고전적 확실성이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 경제, 과학 및 논리적 문제들이 발생했다. 20세기 철학은 기존의 지식 체계를 개혁하고 보존하며 변경하거나 폐지하려는 일련의 시도로 설정되었다. 버트런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에드문트 후설, 마르틴 하이데거, 장 폴 사르트르 등이 20세기 철학의 주요 인물이다.[4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 철학은 주로 분석 철학과 대륙 철학으로 나뉘었다. 분석 철학은 영어권에서, 대륙 철학은 유럽 대륙에서 발전했다. 대륙 철학과 분석 철학 간의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최근에는 그 구분의 유용성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유물론적 역사관과 계급 투쟁 이론을 통해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철학 사상이다. 실용주의는 지식의 유용성과 실천적 결과를 강조하는 철학 사상으로, 퍼스, 제임스, 듀이 등이 대표적이다.[39]
3. 주요 분과
스토아 학파는 철학을 논리학, 윤리학, "물리학"(자연 세계에 대한 연구로 자연 과학과 형이상학을 포함함)으로 구분하였다. 오늘날 철학에서는 대개 철학의 전문 분과를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미학(가치론을 포함한다)으로 나눈다. 논리학은 철학의 주요한 분과 중 하나로 분류되지만, 때때로 철학자들이 철학과는 별도의 과학으로 분리시켜서 다루기도하며, 특성상 철학의 모든 분파에서 적용하는 철학하는 방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러한 폭넓은 분과 안에서 현재 철학에는 여러 개의 하위 분야가 있다. 가장 폭넓은 수준의 구분은 분석 철학과 대륙 철학이다. 대륙 철학의 구분은 전문가들도 문제로 여길 만큼 어려운 일인데 반해서, 분석 철학은 각 시대에 따라 간단하게 구분되는 편이다.
특정 분야의 하위 분과에 쏠린 관심은 시간이 흐르면서 촛농이 녹아내리듯이 사그라들고, 때때로 하위 분과 중 일부가 특별히 주목받는 주제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주요한 분파와 동등하게 문학 분야에서 주목받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40년간 형이상학의 하위 분야였던 심리철학은 분석 철학의 영역에서 많은 관심을 끌어왔다.)
4. 동양 철학과의 비교
서양 철학은 학문으로서 논리적인 관점에 서서 세계 본질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목표로 한다.[71] 반면 동양 철학은 석가나 공자 모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인생에 대한 실천적 관심이 사색을 방향 짓는다는 특징이 있다.[72]
"실재"에 대한 관점에서도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서양 철학에서는 전통적으로 형이상 세계와 형이하 세계, 실재계와 현상계와 같은 이원론적 사고방식이 나타난다.[73]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순수 형상 등이 대표적인 예시인데, 이들은 모두 진실재가 자연의 외부, 즉 자연을 초월한 곳에서 추구되어야 한다고 보았다.[74] 반면 동양 철학에서는 진실재가 개인의 내면에 있다고 본다.[74] 화엄경의 "삼계유일심 심외무별법"(三界唯一心 心外無別法), 선종의 "각하조고"(脚下照顧) 등이 이러한 관점을 보여준다.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와 예토, 열반계와 번뇌계라는 구분은 관찰자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여겨진다.[75]
5. 한국에서의 수용
일본 에도 시대 말기에는 서양 학문이 주로 자연 과학 분야에 한정되어 유입되었다. 니시 아마네는 에도 막부에 의해 네덜란드로 파견되었을 때,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와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를 배우고 일본에 처음으로 서양 철학을 소개했다.[76] 메이지 정부 수립 후에는 실무적인 정치·사회 사상, 그리고 실학적인 공리주의와 실증주의 철학이 주로 수입되었는데, 이는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사회 제도 정비가 시급했기 때문이다.[76]
자유민권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국가의 근거와 이념에 대한 논의가 다시 제기되었다. 나카에 조민은 장 자크 루소의 사회 계약론을 번역하고 해설하여, 유물론과 결합된 실증적인 사회 변혁 논리로 자유민권운동에 영향을 주었다.[77] 이노우에 테츠지로는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을 융합하여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원리에 기초한 철학을 추구했다.[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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